모든 것이 어질러져 있다. 나뒹구는 술병들, 뒤집어진 재떨이, 하지만 단 한가지 가지런히
먼지하나 쌓이지 않은 채 놓인 것이 있다. 작은 액자였다. 그 곳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오래 전, 난 전학을 왔다. 모든게 낯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한 친구가 있었다.
부끄러움을 잘 타 친구가 얼마 없던 나에게 여러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재밌게 놀고
난 그 아이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어 성적을 올렸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
까지 같이 다녔다. 학과까지도... 딱히 집착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아이와 나는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라고 친구가 변하지 않기를 바랬던 나지만
한가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내가 변했다는 것이다. 어느세 대담해져 있는 나, 하지만
난 그 친구와 같이 다녔다. 그리고 여자애 한명, 이렇게 셋이서 같이 다녔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우리 사이에 끼인 한 여자, 그녀가 싫진 않았다. 싫었다면 사귀고 있을
이유도 없을테니까... 어느세 3명의 무리에서 내 친구는 조금씩 작아지고 소외되고
있었다. 그저 우리들의 애정행각을 옆에서 뾰루퉁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내 친구의 성격이 변한 듯 했다. 장난치면 끝까지 따라와서 복수라도
할 녀석인데 툭 건드리니 그냥 웃으면서 본다. 구두쇠면서 내가 살짝 흘겨보기라도 하는 것은
재차 확인하고는 사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급히 3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친구에게
빌려달라고 했다. 빌려주는 것이였다. 왜 이러는거지? 그 의문이 한번에 풀릴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아니 그들의 일상에 자리잡아 버린 당연한 일과를 나는 목격한 것일 뿐이다.
내 친구와 내 여자친구가 서로 꼭 껴앉고 있었다. 하긴 그녀가 우리들의 무리에 낀 것도
내 친구가 자기와 친한 여자애라면서 엉겁결에 붙은 것이다. 도저히 열 받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날 엿먹인 것인가? 옛날의 나라면 조용히 그녀를 놔주었을 것이거늘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나를 억제할 수가 없다. 가만두지 않겠다. 저 둘,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늦은 밤, 친구의 집 앞에서 숨어 있었다. 녀석이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내 여자친구
아니 그년이 내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년이 친구의 집을 나온 후, 나는 재빨리 친구의 집으로 들어가 뒤를 몽둥이로 내리쳤다.
내 얼굴에 묻은 피, 피가 얼마 흐른 것은 아니지만 여러 곳으로 튀었다. 피를 보니 손에
힘이 풀려서 어쩔 줄 몰랐다. 잠시 후, 누군가 신고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경찰이 왔다.
자수라고 할 것도 없다. 피 묻고 방망이에서 내 지문도 나오고...
내 여자친구는 경찰서에서 나를 때리며 눈물을 흘렸고 나는 2년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꽤나 짧은 형이였지만 교도소 안에서의 생활은 굉장히 느렸다. 그렇게 후회를 하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교도소를 나서는 나에게 여자친구가 반겨주고 있었다. 그녀는 용서했다.
참, 웃기지 않은가? 용서 받아야할건 나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누구를 용서한단 말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 폐인 같은 짓을 반복했다. 술이나 마시고 그저 그것에 의존하여 기분 좋
은 발정난 개마냥 마구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여자친구가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편지 하나를 건내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편지인데도 이런거 쓸려니 좀 그러네... 사실 나 병에 걸렸어... 고칠 수 없는 병이레,
수술하면 생명이 연장될 뿐 완치는 안된다나 봐,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나 봐, 어쩌겠어
난 그런 무서운 것 받을 용기가 없는데, 그리고 내가 너한테 빌려준 300만원, 그거 사실
수술비였는데, 사실 나 되게 고민했거든... 어떻게 해야하나... 니가 선택을 편하게 해주었어
고맙고, 고마운 대가로 300만원은 무효로 해줄께... 언젠가 만날 수 있다면 다시 만나자'
이 편지를 다 읽고 난 후 난 여자친구에게서 뜻 밖의 소식을 들었다. 내가 형이 짧았던
이유가 친구가 어차피 곧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고 당일 날, 자신을 불러 이 편지를 전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껴앉은 것에 대해 묻자 그녀는 자신도 병에 대한 소식을 듣고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모든게 들어 맞았다. 친구는 병에 걸려서 기운이 없었던 것이고
내 여자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자 슬퍼 껴앉은 것이고, 마지막에 부른 것도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그런데도 난...
"아마 절대 너를 원망하지 않을거야, 이런 쓰레기 같은 생활은 그만 두고 걔 앞에서 떳떳하게
살아 봐"
맞는 말이었다. 난 이내 곧 그녀와 결혼을 했고 매년 친구의 제사를 지내러 묘에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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