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환하게 웃으면서 걸어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세 입가에 미소가 고여있다.
난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가까우면서도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게끔 작은 거리를 두고 있다.
되게 활발해 보이고, 되게 재밌어 보이고, 되게 낙천적으로 보이고, 그런 모습들은 나의 작은 발버둥이다.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웃고 있다. 어째서...
난 2번 전학을 갔고 4번의 이사를 했다. 변한 풍경, 낯선 사람들, 낯선 친구들, 알 수 없는 슬픔...
그 모든 것을 숨기고 티내려 하지 않으려는 나의 작은 발버둥은 나의 외면으로 나타났다.
딱히 외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면까지도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아니 못하게 할 것이다. 남에게 보이면 현재의 처절한 나의 모습은
비웃음 거리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창문 너머의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집에 갈 때 어쩌나...'
내가 걱정하던 것이 이것이 맞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무심결에
떠오르는 이 것을 믿는 수 밖에 없다. 그게 나를 아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으로 일어난 나의 여러가지 생각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점심시간 쯤 비가 그쳤다.
빗물만 고이지 않는다면 정말 비 온줄도 몰랐을 정도로 말끔하게 그쳤다. 하늘 조차도 발뺌 하듯
푸른 배경을 가진 새털구름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긋하게 지나갔다.
하교 한다. 남들과는 다른 거리로, 아마 누군가 나의 하교 길을 본다면 놀러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 없다' 태평한 척 걸으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집에 들어오면 샤워를 한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책을 편다.
시험기간이라 어쩔 수 없다. 시험 후의 약속까지 잡아놔서 잘치고 즐겁게 놀자는 생각에 들떴다.
물론 지금이 들떴다는 것이다. 난 감정의 기복이 꽤나 큰 편이다. 언제 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보이지 않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너무 딱딱해보인다고나 할까?
수업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작고 재미없는 농담에도 억지 티를 내지않으려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연출하고, 조금 심한 장난임에도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웃음으로 넘긴다. 계속 걸면
어쩔 수 없다. 나의 2중 가면도 깨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내 자신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이나 하면서 보이지 않는 폼이나 잡는지 의심할 때가 있다.
내가 내 마음을 의심한다는 점이 너무 예민하게 와 닿으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걸까? 이 생각을 하는 것도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발버둥일까? 이 생각도?
이 생각도? 이 생각도? 어쩌면 마음이라는 것은 모두 모순된 가짜이고 진실은 외면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정의하는 것이 내면이 아닌 외면에 비치는 모습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당연한 것이다.
참 된 내면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내면보다 외면을 중시한다. 그게 나의 생존 방법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담고 있기엔 답답하고 나타낼려니 두렵기에 그저 담아둔다. 그러던 나에게 웃음으로서, 박수로서
넘길 수 있는, 내 마음을 나타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왔다.
수업시간, 말하기 수행평가라는 명목 하에 교탁으로 나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는 우리에게 종이를 한장씩 나눠 주었다. 이 종이는 쓰레기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찢던 어쩌던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종이에 나타내봐라. 이 것이 교사가 우리에게 준 임무였다.
다양했다. 정말 획기적인 것들도 보였다. 난 그냥 종이를 반으로 찢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반으로
나누는 선을 하나 그어 반에는 웃는 모습, 나머지 반에도 웃는 모습을 그리고 다른 종이의 반에는
우는 모습, 나머지 반에도 우는 모습을 그렸다.
내가 발표하는 의도를 알아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마 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남들에 비하면 그저 초라하기만 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 쪼가리였지만 나의 외면은 활발하고 부끄럼이 적은
당당한 소년이다. 내 외면은 외면이고 내면은 내면이다. 내 내면과 상관 없이 외면은 활발하고 부끄럼이
적은 당당한 소년이기에 막힘 없는 발표를 했다.
"이 종이의 한 쪽은 저의 외면이고 한 쪽은 저의 내면입니다. 그리고 이 종이도 한쪽은 저의 외면이고
나머지 한 쪽도 저희 내면입니다. 외면은 웃고 있습니다. 내면도 웃고 있습니다. 외면은 울고 있습니다.
내면도 울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재미없는 얘기를 해도 외면은 웃습니다. 아니 웃고 있습니다.
의심을 하기도 전에 마음도 어느세 웃고 있습니다. 누군가 슬픈 얘기를 합니다. 외면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의심을 하기도 전에 마음도 어느세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모든게 다 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
니다. 자기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런 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 여러번 이사를 하고 여러번 전학을 갔습니다. 새로운 것들, 아니 낯선 것들 언제나 그것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꾸 이동하다 보니 어느세인가 내가 변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언젠가 변한
것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지 못했을 이해하지 못했을 작은 눈물이 눈 안에는 흐르고 있었다. 스스로 무언가 감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점수는 진실이 와닿았다나? 하는 이유에서 만점을 받았다. 솔직히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발표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발표 이후에도 나는 2중 가면을 쓰고 평상시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이 발표에선 내가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무언가도 떠오르게 해주었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저 답답함만 풀어버리고 끝난게 다가 아니다. 이 것으로서 내가 느낀게 한가지 있다면 내가
이런 의심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혹시 이 모든게 나 자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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