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 공포로 물든 반호르>
1-1 만남의 기억
"으.. 으응...?"
눈이 부시다.. 세실리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바람에 출렁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세실리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벌써 아침인가? 그다지 편안했던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오랜 여행으로 잠이 부족할대로 부족한 세실리아에게 아침이란 것은 서운하기에 그지 없는 매일같이 번복되는 현상이다.
세실리아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밤새 잠자리를 설치며 뒹굴다 옷에 묻은 것들을 대충 손으로 털어낸 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던 바위같은 그 남자는 지금 여기에 없다. 뒷편에 남자의 검과 갑옷이 가지런히 놓아둔 것을 보아 아직 근처에 같은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왜 그 남자에게 걱정 같은 걸 하고 있는거지?..
"아, 깼소?"
세실리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휙 돌렸다. 그 남자였다. 그는 어디선가 달리기라도 했는지 온 몸이 땀범벅 투성이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그 얼굴을 보니 아까 전의 생각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휙 돌려 남자의 시선을 피한다.
세실리아는 고개를 돌린 체 그대로 생각한다.
'한낮 용병일뿐인 저런 남자에게 내가 왜 이런 감정이 드는거지? 아니야. 아닐꺼야..'
세실리아는 사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귀족 출신이다. 귀족이 용병한테 반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그렇기에 세실리아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려는 듯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오?"
그런 세실리아가 이상하게 보인건지 조심스럽게 걱정하듯이 묻는 남자. 그 말에 깜짝 놀란 세실리아는 남자를 다시 바라보며 애써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에 남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세실리아의 어깨를 지나쳐, 그녀의 뒷편에 놓아둔 자신의 검과 갑옷을 장비하러 갔다.
"후우.."
세실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자신이 저 남자에게 이런 감정이 드는 것도, 그리고 이런 일로 너무나도 심각해져 임있는 자신에게도 한심스러웠다.
'나는 저런 남자와는 그저.. 그저! 아니, 난 이미...'
"..하아!... 하아!.."
세실리아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눈 앞의 적을 응시한다. 주위를 성큼성큼 걸으며 자신을 죽일듯이 지켜보는 진한 살기 어린 붉은 눈. 금방이라도 달려와서 덮칠 것 같은 기세로 이빨 사이로 으르렁 거리는 한 마리의 난폭한 맹수. 거대한 붉은 곰이 지금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세실리아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실리아는 탄광마을 반호르를 향해 길을 가던 도중에 어디선가 툭 튀어나와 다짜고짜 앞발을휘두르는 곰의 기습적인 공격을 당했다. 다행히 그 공격은 어떻게든 피하기는 했지만, 곰이 휘두르면서 날카로운 앞발에 어깻죽지가 스쳤다. 피는 멈출 생각도 않고 쉴세없이 흘렀다.
그러나 곰은 세실리아가 지혈할 틈도 주지 않고 이유없는 공격을 계속 했고, 세실리아는 그 공격을 계속 피하다가 결국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빈혈 증상이 일어나 지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정신을 잃고 나면 그 다음은 없다는 것을 세실리아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그러니 당하지 않으려면 공격하는 수 밖에 없다. 세실리아는 눈을 찌부린 체 흐릿한 정신을 가누고 어깻죽지의 얼얼한 통증을 참아가며 양손을 모아 아이스 볼트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실리아의 양손 주변에 푸른 기운이 서서히 모였다.
'녀석에게 이것을 먹일 수만 있다면 최소한 도망갈 구실은 만들 수 있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은 아직 한가닥 남아있다. 세실리아는 제발 녀석이 영창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질 않길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며 아이스 볼트를 영창했다. 앞으로 10초만 더..
크어어어어어어어어엉!!!
그러나 곰은 세실리아의 양손에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빛을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성난 울음을 토해내며 그녀를 향해 사납게 돌진했다. 세실리아와 곰의 거리는 50 미터도 체 안됬다. 아이스 볼트를 시전하기 까지는 6초가 남았다. 그리고 3초가 남았을 때에는 곰은 이미 눈 앞에서 앞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웅!!!
휘둘러진 곰의 앞발에서 위협적인 풍압 소리가 세실리아의 귓가를 스쳤다. 늦었다. 분명히 늦었다. 끝이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세실리아는 그대로 눈을 감는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보람없는 삶은 아니었..
퍼어어어어어억!!!!
크허어어어엉!!
세실리아는 휘둘러진 곰의 앞발에 자신이 맞고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하며 세실리아는 감은 눈을 천천히 떳다. 자신은 지금 살아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 앞에 있던 곰은 지금 그녀의 발 끝 앞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상했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곰이 자비를 배풀 지 않는 한 자신은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리고 이 화살..
"이보시오. 괜찮소?"
세실리아는 몸을 숙인 체 곰의 머리 정수리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세실리아는 낮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는 남자가 놀란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남자의 오른 손에는 롱보우가 쥐어져 있고 화살통을 멘 것을 보니 아마도 자신을 구해준 것은 이 남자일 것이다
"아, 아.. 네... 아. 고마워.. 어?"
예의 차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던 순간 세실리아는 갑자기 눈 앞이 어질해져서 비틀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이다.
투욱..
세실리아는 딱딱한 땅의 감촉과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온기가 서린 마치 사람의 몸에 안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쯤 풀린 눈으로 세실리아는 앞을 바라봤다. 자신을 도와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 남자는 걱정이라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저런 얼굴을 나는 몇 년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일까?
세실리아는 무어라 중얼거리곤 그대로 기절했다.
그것이 세실리아와 남자의 첫 만남. 방금전까지 복잡했던 자신의 마음이 그때를 기억하고보니 너무나도 가식적이었다는 것을 세실리아는 깨달았다. 그리고 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애써 부정하려는 것도.. 그리고 독백한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천민이든
모두 다를 것 없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신분'이라는 제한을 둘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고 감정이 아닐까?..
세실리아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셨다. |
시원한파스
천화
에스와이엔젤
らき☆す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