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사는 이유>
타닥타닥..
"........."
"........."
남자는 아무 말도 없다. 그저 모닥불에 쌓여있는 나뭇가지를 하나씩 던져 넣으며 타오르는 불꽃만 바라보고 있다. 그와 반대로 남자의 옆에 동행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무언가 어색한 듯 손을 계속 만지작 거렸다. 남자는 의식을 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장시간 동안 남자와 대화 한 마디 조차 나누지 않은 상태라 지금 이 자리가 몹시도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런 여자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남자는 입도 뻥긋 거리지 않고 모닥불만 지켜본다.
"하아..."
여자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녀는 남들 처럼 말은 하고 사는 편이기에 이런 정적에 휩싸인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고독을 즐기는 듯 담담하기 그지 없는 남자에 비해서 여자 쪽은 자꾸만 사무치는 어색함을 떨쳐보려고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으나, 남자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풍겨져 나오는 거북할 정도의 엄숙함에 말을 걸어보기는 커녕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숨.
여자는 남자에게 말 걸기를 체념한 듯 조금 이르지만 잠자리에 드러눕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나른하게 만드는 편안한 잠자리.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마도 방금 전까지 긴장을 많이 한 탓 이겠지 라며 여자는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렇게 수 분을 뒤척거리다 남자를 뒤로 한 체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진다.
타닥타닥..
".........."
타닥이는 모닥불 소리만 존재하는 고요한 숲속에서 남자는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다. 남자는 그 불꽃 속에서 보았다. 많은 것을 보았다. 성이 활활 타오른다. 공포에 젖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자신은 무기력하게 지켜만 보았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아는 사람들.. 모두 죽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한심했다. 그리고.. 그리고.....
"음..."
깜빡 졸았보다. 정신을 차린 남자는 자신의 눈가가 촉촉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젖은 그것을 팔로 대충 닦아낸다. 더 이상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겠다고 언젠가 맹세했건만.. 남자는 그저 쓴웃음만 짓는다. 그리곤 옆에 놓아둔 자신의 검을 집어서 새하얀 달빛에 검을 비추었다. 그러자 잠시 후 없던 글자가 달빛에 비쳐 검신에 서서히 드러났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시온에게'
"..아버지..."
남자는 흐느끼듯 그 단어를 읊조렸다. 너무나도 정다운 단어이지만 오랫동안 입에 담아보질 않았다. 그리곤 검의 손잡이를 주먹이 하얗도록 꽉 움켜쥐곤 검을 허공에 한번 그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누그러졌던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무언의 감정으로 이글이글 거렸다. 남자에겐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복수'라는 감정으로..
'그렇다. 나는 복수한다. 아니 복수해야만 한다. 나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간 자들에게 내가 당했던 모든 것을 되갚아줄 것이다. 녀석들의 눈 앞에서 놈들의 소중한 것을 갈갈이 찢어버리고 밣아서 내 가족의 피로 떡칠한 그 더러운 얼굴에 절망과 공포를 새겨놓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산다. 살아가고 있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고 하여도 나는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복수라는 하나의 방법 밖에는 이 삭막한 세상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타닥타닥..
"........."
남자의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한줄기의 식은 땀. 남자는 쓸때없이 열을 올린 것에 대해서 자신을 조금 책망한다. 그때 뿌연 연기가 남자의 얼굴을 스치고 간다. 남자는 문득 모닥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세 모닥불은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꺼질 것 같으니 남자는 얼른 땀이 나도록 손에 쥐고 있었던 검을 제자리에 놓아두곤 흐트러져 있는 나뭇가지를 몇 개를 주워 모닥불에 던져 놓고는 잠시 그 자리에서 눈을 붙이기로 하였다.
더 이상 깨어 있다가는 어느세 흐느끼고 있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있을 지도 모를테니까.. |
시원한파스
모르면쌉쳐
마지막잎새
GG홀릭a
